치악산 잣나무 숲길을 거닐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한없이 걷다 보면 마음에 쌓인 응어리나 매듭이 저절로 풀려진 것을 느낀다. 또 여러 가지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단순한 멜로디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 나름 작사 작곡(?)을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에게는 깊은 감동을 준다. 이처럼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산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원주 굽이길과 치악산 둘레길은 자연이 주는 커다란 선물이다.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라고 한다. 참으로 강릉과 원주는 강원도 지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연의 보물이다. 마냥 걷다가 머물다 가고 싶은 곳이 참 많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도 올레길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리고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면서 우리나라 곳곳에 다양한 둘레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나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산과 하늘, 바람과 구름, 나무와 들꽃, 물과 들풀이 맘껏 어우러져 있다. 나처럼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연은 더 없는 기쁨이요 행복이다.
오래 전 치악산 능선을 완주하기 위해 선배 수녀님과 함께 원주에 다녀간 적이 있다. 이제 나는 원주 굽이길과 치악산 둘레길을 틈틈이 거닐게 되었다. 몇 달 전에 원주로 파견되었기 때문이다. 틈이 날 때마다 산책하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뒷골목을 구름처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동네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치악산 둘레길을 하나 하나 걷고 있다. 최근 둘레길 조성을 마친 11번 코스 한가터길에 있는 잣나무 숲길을 먼저 걸어 보았다. 둘레길을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듯 지그재그로 만든 오솔길은 오가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그 숨결을 느끼며 인사하게 한다. 마치 그 동안 단절되어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했던 관계를 이어주는 듯하다. 곳곳에서 등산객들을 기다리는 벤치들은 앞만 보고 달려가던 이들에게 쉼터를 내어준다. 서둘러 곧장 가지 말고 이따금 뒤돌아보면서 쉬었다 가라 한다.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렸으면 그토록 높이높이 치솟아 오를까? 하늘 높이 올라가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하늘 자락을 움켜쥐려는 듯 자꾸만 올라가는 잣나무의 소망은 무엇일까? 이 숲속의 고요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소리를 가슴 아프도록 가만히 듣고 있을까? 하늘로 하늘로 손을 내미는 잣나무의 꿈은 무엇일까? 내 꿈도 그렇게 하늘 높이 이르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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