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28, 2023

Brother Andre 앙드레 수사

Alfred Bessette (1845-1937) was one of those called to be a follower of Jesus. His journeys from laborer to religious brother, from doorkeeper to builder and unifier of the church drew much attention. As the man of miracles on Mount Royal in Montreal, he is now the patron saint of family caregivers in Canada.

He was born on Aug. 9, 1845, in Saint-Gregoire d'Iberville, Quebec, as the eighth of 12 children. His father, Isaac Bessette, a carpenter and lumberman, was killed by a falling tree when Alfred was 9 years old. His mother Clothilde Foisy passed away from tuberculosis two years later.

In spite of his chronic stomach pains and little education, he had a lively faith and a strong devotion to Saint Joseph. He sincerely asked St. Joseph to give him health and ability. He used to say, "How good the good Lord is! He always dotes on us!"

He worked hard on a farm and took various jobs such as apprentice shoemaker, blacksmith, tinsmith, wheelwright and baker. At age 18, he moved to work at the textile mills across Connecticut in the U.S. but he returned to his country after four years.

Through sincere prayers, he cultivated a virtuous life that caught the eye of the parish priest, Andre Provencal, who guided him to enter the Congregation of Holy Cross, founded by Basile Antoine Moreau in France in 1837. Initially, Holy Cross did not accept Alfred because of his poor health, but he appealed to a visiting archbishop of Montreal.

With the grace of God, he took the religious name Andre after his parish priest and he made his final vows on Feb. 2, 1874, at the age of 28.

Because of his frail health and lack of formal education, Brother Andre was assigned doorkeeper of Notre Dame College where he cheerfully greeted visitors and students' parents and tended to their needs. He also served as a gardener, lamp tender, nurse, barber, laundry worker and messenger.

The daily visitors soon included the sick, the suffering and the downtrodden. When they asked for healing, saying, "Brother Andre, if you want to, you can cure me," he would humbly reply, "No, not I, but St. Joseph can cure you if you put your trust in him."

It was to honor St. Joseph that Brother Andre and his friends built an oratory in 1904. He saved the money he earned from giving haircuts to students. As more people kept coming, he was assigned as caretaker of St. Joseph's Oratory in 1909.

Then, the reconstruction went on until 1967. For this visionary project, Brother Andre placed total trust in St. Joseph, saying, "It's not my work; it's St. Joseph's. Put his statue in the middle of the construction; if St. Joseph wants a roof over his head, he'll see to it." Thus, St. Joseph's Oratory of Mount Royal was built.

Many people admired his simplicity, humility, listening, compassion, humor, hospitality and opening to the sick, the wounded and the needy. He led them to God by praying with them. Many of them were cured. About 500 crutches and wheelchairs are now displayed in the Oratory. Brother Andre was canonized by Pope Benedict XVI on Oct. 17, 2010.

https://www.koreatimes.co.kr/www/nation/2023/06/162_353634.html

The Korea Times/ Thoughts of the Times/ June 28 (online), 29 (offline), 2023

앙드레 수사

알프레드 베셋(1845-1937)은 예수님을 따르는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 가운데 하나다. 노동자에서 수사로, 수위(문지기)에서 교회 건축가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량을 지닌 사람이 된 그의 여정은 눈길을 끈다. 그는 몬트리올 몽로얄(로얄산)에서 기적을 일으킨 사람으로, 현재 캐나다 가족 간병인들의 수호성인이다.

앙드레 수사는 1845년 8월 9일 퀘벡 생 그레고르 디베르빌에서 열두 자녀 가운데 8번째로 태어났다. 그가 9살이었을 때 목수이자 벌목꾼이던 아버지 아이작 베셋이 쓰러진 나무에 깔려 선종했고, 그의 어머니 클로딜드 포이지는 그로부터 2년 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늘 만성 복통에 시달렸고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요셉 성인께 대한 생생한 믿음과 굳건한 신심을 지니고 자신에게 건강과 능력을 달라고 간절히 청했다. “선하신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요!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맹목적으로 사랑하십니다.” 하고 그는 말하곤 했다.

그는 농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견습 구두수선공, 대장장이, 양철공, 수레공, 제빵사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18살에는 미국 코네티컷 주에 있는 섬유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이주했지만 4년 만에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덕스럽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앙드레 프로방살 본당신부의 눈길을 끌었고, 앙드레 신부는 그가 1837년 프랑스에서 바질 앙투안 모로가 세운 성십자가수도회에 들어가도록 이끌었다. 처음에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그는 마침 수도회를 방문한 몬트리올 대주교에게 자신의 상황을 호소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는 본당신부를 따라 자신의 수도명을 앙드레로 선택했고, 1874년 2월 2일, 28살에 종신 서원을 했다.

허약한 건강과 미흡한 교육 때문에 앙드레 수사는 노틀담 대학 문지기 소임을 받아 방문객과 학부모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그들의 요청에 응답했다. 그는 또한 정원사요 램프 관리자는 물론 간호, 이발, 세탁, 심부름 등을 하며 봉사했다.

날마다 방문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환자들과 고통받는 이들, 상심한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앙드레 수사님, 수사님이 원하신다면 저를 치유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며 자신을 치유해 주길 청했다. 그럴 때마다 앙드레 수사는 겸손하게 “아닙니다. 제가 치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 성인을 신뢰하면 당신은 치유될 수 있어요.” 하고 대답했다.

1904년, 앙드레 수사와 그의 친구들은 요셉 성인을 공경하기 위하여 작은 성당을 지었다. 그는 학생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번 돈을 모아 보탰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그는 1909년에 성 요셉 성당 관리인이 되었다.

성당 재건축은 1908년부터 1967년까지 지속되었다. 이처럼 앞을 내다본 건축 계획을 위해 앙드레 수사는 요셉 성인을 온전히 신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성당은 내 일이 아니라 요셉 성인을 위한 것입니다. 공사장 한복판에 요셉상을 놓으십시오. 요셉 성인께서 당신 머리 위에 지붕을 올리기를 바라신다면 당신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몽로얄 성요셉성당이 세워졌다.

많은 사람이 그의 단순함과 겸손, 경청하는 자세, 연민 어린 마음, 유머와 환대, 환자들과 상처 입은 이들과 궁핍한 이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그들을 하느님께 이끌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치유되었고, 그들이 두고 간 500여 개의 목발과 휠체어가 성당에 전시되어 있다. 앙드레 수사는 2010년 10월 1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Wednesday, June 14, 2023

Two sides of Canada 캐나다의 두 모습

As I go on volunteer mission trips to the East Coast area of Canada, the most impressive thing is that this maple leaf country makes great efforts to be eco-friendly and save the earth.

As I drove a car from Detroit in Michigan to the Canadian border, I saw so many wind turbines constantly moving around in the field as if to greet us with open hands. Converting the energy of the wind into electricity will surely contribute to lessening the crisis of the warming globe.

One day, when I went to “Jardin Botanique” (botanical gardens) in Montreal, I couldn’t find any printed guide map. When I asked for a guide map at the entrance guide, he said: “We don’t have any printed guide map. Please take a picture of it.” Even though it was inconvenient, I appreciated the intention to save resources. Surely, this eco-friendly movement will contribute to saving the earth.

Another notable point is the gradual decline of the marvelous church constructions. In the Archdiocese of Montreal, Catholics make up 70 percent of the population. There are 650 churches and among them, 205 are Catholic churches (170 parishes and 35 missions).

Church buildings with beautiful interiors and exteriors are found in every lane but, unfortunately, many churches are closed or used for other purposes. Even the crucifixes on top of some churches had been removed and the gorgeous beauty of the outer walls has been neglected.

One of the historic parishes, Sainte-Cunegonde Church in the street of Saint-Jacques, was handed over to the Korean migrant Catholic community established in 1979 in Montreal with the name of Mission Saint Martyrs Coreens.

Making use of the old construction is encouraging to see, even though it costs some amount of money for repair.

In spite of the gradual downfalls of considerable constructions, some parishes are still maintaining gorgeous and phenomenal features. Among them, I visited two national historic sites: L’Oratoire Saint-Joseph du Mont-Royal (Saint Joseph’s Oratory of Mount Royal) and Basilique Notre Dame de Montreal (Notre-Dame Basilica of Montreal), an exact replica of Notre-Dame Cathedral of Paris in Gothic style.

Saint Joseph’s Oratory was built in 1924 by Brother Andre in honor of Saint Joseph. The remains of Saint Andre are in the church. Saint Andre is well-known for many miracles: those who were healed left their crutches in the church. Thanks to many miracles, pilgrims keep visiting these churches.

Another significant church is Mary Queen of the World Cathedral built between 1870 to 1894 in the style of the Italian Renaissance revival, inspired by Saint Peter’s Basilica in Rome. The oldest church built over the ruins of an earlier chapel in 1771 is Notre-Dame-de-Bon-Secours Chapel in Old Montreal.

Solid and gorgeous stone architectures reveal the cultural influence of France and England. In the later 16 century, England and France explored Canada and they settled on the Atlantic coasts in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After seven years of war, France handed over New France (Nouvelle-France) to England. And finally, in 1867, Canada became independent from England.

Being mingled in cultures, various migrants still come here to study or to settle. “Sun and moon, bless the Lord … All you, winds, bless the Lord…” (Daniel 3: 62,65)

https://www.koreatimes.co.kr/www/nation/2023/06/162_352744.html

The Korea Times/ Thoughts of the Times/ June 13 (online), 14 (offline), 2023

캐나다의 두 모습

캐나다 동부 지역으로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이 단풍잎 나라가 지구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되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운전하는 동안 나는 마치 활짝 펼친 두 손으로 우리를 반기듯 들판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수많은 풍력 터빈(발전기)을 보았다. 바람의 운동 에너지를 전력으로 변환시키는 일은 분명 지구 온난화의 위기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어느 날 몬트리올 식물원에 갔는데 종이 가이드 맵을 찾을 수 없었다. 입구에 선 안내인에게 안내 지도를 달라고 했더니, 그는 “인쇄된 가이드 맵은 없습니다. 이 안내지를 찍어 가세요.” 하고 말했다. 불편하긴 했지만 자원을 아끼려는 의도가 고맙기만 했다. 이러한 친환경 운동은 분명 지구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점은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이 점점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몬트리올 대교구의 가톨릭 신자는 해당 인구의 70퍼센트에 이른다. 몬트리올에는 650여 개의 교회가 있는데, 그 가운데 205개가 가톨릭 성당이다(170개가 본당이고 35개는 공소).

골목마다 안팎으로 아름다운 성당 건물을 엿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성당이 문을 닫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성당 첨탑에 있던 십자가가 철거된 곳도 있고, 한때 아름다웠던 외벽이 방치된 채로 있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성당 가운데 하나인 생 자크 거리에 있는 생트 퀴네공드 성당은 1979년에 한인 가톨릭 공동체로 넘어가 이제 ‘한인 순교자 성인 성당’(Mission Catholique Saint Martyrs Coreens)이라고 불린다. 수리비가 좀 들긴 하지만 오래된 건축물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상당한 건축물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에도 몇몇 성당은 여전히 웅장하고 경이로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성당 두 곳을 순례했다. 성 요셉 대성당(L'Oratoire Saint-Joseph du Mont-Royal)과 고딕 양식으로 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그대로 재현한 몬트리올 노트르담 대성당(Basilique Notre Dame de Montreal)이다.

성 요셉 대성당은 1924년 앙드레 수사가 성 요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유해가 성당 안에 모셔져 있는 앙드레 성인은 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유받은 사람들은 목발과 지팡이를 성당에 두고 갔는데, 이처럼 수많은 기적 덕분에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또 다른 주요 성당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1870년에서 1894년 사이에 지은 세계의 여왕 마리아 대성당이다. 1771년에 세운 성당의 폐허 위에 세운 가장 오래된 성당은 올드 몬트리올에 있는 노트르담 드 봉 세쿠르 성당이다.

견고하고 웅장한 석조 건축물은 프랑스와 영국의 문화적 영향을 드러낸다. 16세기 후반, 영국과 프랑스는 캐나다를 탐험하였으며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대서양 해안가에 자리잡게 되었다. 7년간의 전쟁 끝에 프랑스는 뉴프랑스(누벨프랑스)를 영국에 넘겨주었고, 1867년에 이르러 캐나다는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다양한 이민자들이 뒤섞인 문화 가운데 공부하거나 정착하기 위해 꾸준히 캐나다를 찾아오고 있다. “해와 달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바람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다니엘 3,62.65)

Tuesday, June 6, 2023

Journey of Trials 시련의 여정

One day in 2002, while strolling around winding paths in a field, a certain melody came to my mind. Then, I kept singing the resounding melody again and again. In this way, I composed my song entitled “Journey of Trials.”

The title of the song originated from a book by Fr. James Alberione, the founder of our religious congregation.

As I kept singing, I realized that all of us are undergoing the same journey, which comprises various trials and tribulations in some form or other. Truly, we are constantly going through a process of ups and downs in many ways.

Since then, I sang “Journey of Trials” from time to time on special occasions. Now, when I go on mission trips to Canada, especially after Communion, during Mass in the Korean Catholic communities, I sing this song while playing the guitar. And I see many people appreciate the meaning of the song and they are touched by the lyrics. The story of “Journey of Trials” is as follows:

Just as Jesus needed 30 years,

just as the Israelites needed 40 years,

we also needed a long time.

All of this was the providence of God.

At one time, no matter how I looked at it,

it seemed like I was walking in place.

So, I wanted to sit down without thinking.

But looking back, it was all a gift from God.

A journey of trials that we must go through.

Now Christ will live in me.

When we meet again, I will ask one another.

How much do you resemble Jesus?

How much did you love with all your strength?

Many people shed tears while appreciating it. I am also always touched by this song whenever I sing it. Recently as I sang it at eight o’clock Mass on Sunday in the Sacred Heart of Jesus Parish in Toronto, and I could not help but have a lump in my throat.

Our lives are filled with amazing graces that lead to the theme of a popular allegorical poem titled “Footprints in the Sand.” It tells a story of a person who sees only one pair of footprints in the sand.

One night I dreamed a dream.

As I was walking along the beach with my Lord.

Across the dark sky flashed scenes from my life.

For each scene, I noticed two sets of footprints in the sand,

One belonging to me and one to my Lord.

After the last scene of my life flashed before me,

I looked back at the footprints in the sand.

I noticed that at many times along the path of my life,

especially at the very lowest and saddest times,

there was only one set of footprints.

This really troubled me, so I asked the Lord about it.

“Lord, you said once I decided to follow you,

You'd walk with me all the way.

But I noticed that during the saddest and most troublesome times of my life,

there was only one set of footprints.

I don’t understand why, when I needed You the most, you would leave me.”

He whispered, “My precious child, I love you and will never leave you

Never, ever, during your trials and testings.

When you saw only one set of footprints,

It was then that I carried you.”

https://www.koreatimes.co.kr/www/opinion/2023/06/162_351960.html

The Korea Times/ Thoughts of the Times/ June 1 (online), 2 (offline), 2023

시련의 여정

2002년 어느 날, 들판의 구불구불한 길을 거닐다 어떤 멜로디가 떠올랐다. 그 이래 나는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그 멜로디를 거듭 흥얼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시련의 여정’이라는 노래를 지었다.

노래 제목은 우리 수도회의 창립자이신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님의 책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노래를 거듭 부르면서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여정을 걸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여정은 여러 모습의 시련과 고통을 담고 있다. 참으로 우리는 여러 면에서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부침(기복)을 겪는다.

그 이래 나는 특별한 날이 되면 때때로 ‘시련의 여정’을 불러왔다. 이제 캐나다 선교 여행을 하면서 한인성당을 방문하여 미사 드리는 가운데, 특히 영성체 후 특송으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른다. 많은 사람이 가사를 듣고 그 의미를 음미하며 감동받는 것을 본다. ‘시련의 여정’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에게 3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듯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이 필요했듯이

우리에게도 기나긴 세월이 필요했어요

이 모든 것 하느님의 섭리였어요

한때는 아무리 봐도 제자리걸음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주저앉고 싶었지만은

뒤돌아보면 그 모든 것 하느님 선물

반드시 거쳐야 할 시련의 여정

이제는 그리스도 내 안에 사시리라

다시 만나면 서로에게 물어보리라

얼마만큼 예수님을 닮았느냐고

얼마만큼 온 힘 다해 사랑했냐고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감상하며 눈물을 흘린다. 나 또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늘 감격스럽기만 하다. 최근 토론토 예수 성심 성당에서 8시 주일미사를 드리며 이 노래를 불렀는데, 어김없이 목이 메었다.

우리 삶은 놀라운 은총으로 가득하다. 그 은총은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널리 알려진 우화시의 주제로 이어진다. 이 시는 모래 위에 찍힌 한 사람의 발자국을 바라본 어느 사람의 체험을 들려준다.

어느 날 밤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꿈속에서 주님과 함께 해변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러

제가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펼쳐졌습니다.

장면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제 앞에 스쳐 지나갔을 때

저는 모래 위에 펼쳐진 발자국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제 삶의 길을 따라 여러 차례, 특히 가장 우울하고 슬플 때

모래 위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실이 저를 몹시 괴롭혀 저는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을 때

당신은 언제나 저와 함께 걸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삶에서 가장 슬프고 힘든 시기에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당신이 왜 저를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소중한 아이야, 나는 너를 무척 사랑하기에 결코 너를 떠난 적이 없다.

나는 절대로 너를 버려 두지 않는다. 네가 겪은 시련과 고통 가운데

모래 위에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다.”